160 초반의 어중간한 키, 특이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은 사진 속 이 사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좀 힙한 아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현재 전 세계 스트릿 패션계를 주름잡는 거장 중 한 명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루이비통의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였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 일본 출신 디자이너 니고(NIGO)다.
NIGO의 인생
나가오에서 니고로
지금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된 니고(NIGO)는 어릴적 서브컬쳐 문화와 패션을 좋아하던 한 소년, 나가오 토모아키였다. 그랬던 그는 자연스럽게 일본 도쿄의 패션 대학인 문화복장학원을 졸업한 후 그 당시 그가 신봉하던 일본의 스트릿 패션계 대부인 후지와라 히로시와 함께 일하게 된다. 우라하라 (일본 하라주쿠 뒷거리로서 일본 서브컬쳐 문화의 개척지) 거리의 일원으로 함께하게 된 나가오는 당시 그의 멘토였던 후지와라 히로시의 옆에서 스타일리스트와 에디터로서 그의 일을 도왔는데 그곳이 바로 후지와라 히로시가 일하던 잡지사 “뽀빠이”였다. 당시 패션계의 소식을 놓치지 않던 후지와라 히로시는 그가 가진 전 세계적인 인맥들과 주기적으로 교류하였고 이 계기로 후지와라와 외모가 상당히 비슷했던 나가오도 후지와라의 이인자, 니고 (이인자의 일본어 표기법)로 불리는 사건이 된다. 후지와라 히로시의 큰 팬이었던 니고도 이 사실에 만족해했지만, 자신도 누군가의 이인자가 아닌 개인 브랜드를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A Bathing Ape
1993년 니고(NIGO)는 1968년 작 영화 혹성탈출을 보다가 큰 영감을 받고 브랜드를 설립하게 된다. 그는 영화 속 유인원과 일본 온천 지역에서 온천을 하는 원숭이를 결합한 케릭터 A Bathing Ape (목욕하는 유인원이라는 뜻)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후 니고는 케릭터에서 모티브를 얻어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했던 그래픽 디자이너인 SK8THING과 함께 패션 브랜드 A Bathing Ape, 줄여서 베이프를 발매하게 된다. 당시 니고(NIGO)는 대학에서 만난 준 타가하시 (언더커버의 창립자)와 우라하라에 “NOWHERE” 이라는 편집샵을 열었는데 이곳이 바로 베이프의 첫 판매지가 된다. 일본 국내 스트릿 패션계에서 인지도가 있었던 니고(NIGO)의 브랜드는 큰 인기를 거두지만 니고(NIGO)의 야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니고(NIGO)는 브랜드의 홍보를 위해 당시 일본의 뮤지션 이른바 “시부야계”를 창시했다고 평가받는 인물로 여겨지던 밴드 코넬리우스의 오자와와 오야마다에게 베이프의 옷을 선물했고 또한 일본 힙합계의 살아있는 레전드 힙합 그룹 스차다라파에게도 옷을 선물했다. 결과적으로 베이프의 일본 내에서의 인기는 치솟았고 베이프의 명성도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인맥의 힘
후지와라 히로시의 일본을 넘어선 다양한 인맥을 자기 눈으로 본 니고(NIGO)는 자신의 브랜드 베이프도 세계적으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가 배운 인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니고(NIGO)는 자신이 아무리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대중이 모른다면 브랜드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안 것이다. 그 당시 니고(NIGO)는 대중의 소비 욕구를 끌어내기 위해서 동시대 최고 아티스트의 인맥이 필요했고 그는 미국의 팝스타 퍼렐 윌리엄스 (Pharrell Williams)와 인연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세계 최고의 스타와 연을 맺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지만 아주 영리한 사람이었던 니고(NIGO)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게 된다. 그는 퍼렐 윌리엄스가 이용하는 보석상 제이콥앤코에 연락해 퍼렐 윌리엄스가 착용한 목걸이와 똑같은 상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그의 독특한 요청은 제이콥앤코의 사장 제이콥 아라보를 통해 퍼렐 윌리엄스 (Pharrell Williams)의 귀까지 도달하게 됐다. 같은 관심 분야와 뛰어난 감각이 있었던 퍼렐 윌리엄스와 (Pharrell Williams) 니고(NIGO)는 이른 시간 안에 친분을 쌓게 되었고 니고(NIGO)의 바람대로 퍼렐 윌리엄스는 베이프를 입고 전 세계적으로 브랜드를 알렸다. 세계적인 유명인들이 베이프를 즐겨입었고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그룹 빅뱅이 선호하는 브랜드였다. 브랜드의 성공과 비례하게 음악 프로듀서와 DJ로서 다양한 서브컬쳐 문화에 꾸준히 시도했던 니고(NIGO)의 인기도 높아져만 갔다. 결국 그는 힙합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스트릿 디자이너로서 자리매김했고 전 세계 스트릿 패션계의 거장이 되었다. 니고(NIGO)는 베이프를 시작으로 퍼렐 윌리엄스 (Pharrell Williams)와 패션 브랜드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과 아이스크림의 공동 대표를 역임했고 당시 니고(NIGO)는 이미 디자이너의 디자이너와 같은 인물로 여겨졌다.
베이프의 몰락
베이프가 세계적인 브랜드 반열에 오른 뒤 니고(NIGO)는 계속해서 브랜드를 확장시켜나갔다. 브랜드를 전세계의 편집샵에 입점시켰고 수많은 라인업 브랜드를 출시시켰다. 대표적으로는 나이키의 에어포스 디자인을 오마쥬한 신발 브랜드 베이프 스타(BAPESTA)와 아동복 브랜드 Baby Milo가 있다. 하지만 베이프의 무리한 확장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베이프의 브랜드 이미지가 힙한 사람들만 입는 희귀한 브랜드에서 누구나도 입는 옷의 이미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자신의 실수로 손상되어 버린 브랜드 이미지를 니고(NIGO)는 인정했고 결국 2011년 그는 회사의 지분 90%를 홍콩의 의류 브랜드 I.T에 매각했고, 베이프는 중국 브랜드가 되었다가 유럽 CVC 파트너사가 인수하여 현재는 유럽 브랜드로 넘어갔다. 이미 니고(NIGO)는 베이프와 일하지 않게 된 것이다. 가장 높은 피크를 찍었던 브랜드에서 이제는 흔한 브랜드의 전 디자이너가 된 니고(NIGO)의 소식은 한동안 잠잠했다. 그는 일본 내에서 브랜드의 기초를 더욱 탄탄하게 하기 위한 연마하고 있었다. 대중들에게 다시 니고의 복귀를 알린 것은 그가 카레 음식점 “커리업”을 열면서 F&B 사업에도 영향력을 끼치면서이다. 이후 비교적 최근인 2021년 니고(NIGO)는 다시 디자이너로서의 화려한 복귀를 하는데 이는 일본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의 브랜드인 겐조(Kenzo)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역임하게 되면서다. 가장 콧대 높은 전세계적인 패션 집단 LVMH가 디자이너 니고(NIGO)를 브랜드 디텍터로 선정한 것은 그가 보여준 능력과 더 큰 잠재성을 느꼈다는 것인데 이 계기로 니고(NIGO)는 다시금 대중에게 인정받게 된다.
휴먼메이드와 디자이너 니고
2010년 베이프를 매각할 즈음 니고(NIGO)는 그의 두 번째 브랜드인 휴먼메이드를 발매했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니고(NIGO)의 브랜드이니만큼 초기에 대중은 큰 관심을 가졌지만 이내 베이프와는 전혀 다른 컨셉을 가진 휴먼 메이드에 실망하고 만다. 하지만 니고(NIGO)는 유행을 따르기 보다는 선도하기로 했다. 그는 베이프 시절 느낀 경험을 통해 휴먼 메이드를 하이엔드 스트릿 브랜드로 이미지 메이킹 했으며 또한 제품에 질도 높았기에 그의 브랜드 역사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차금 차금 단단해져 갔다. 이후 점점 마니아층이 짙어져만 가던 휴먼메이드는 글로벌 셀레브리티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고 국내에서도 뉴진스와 같은 많은 유명인이 착용하면서 유명해져갔다. 현재 휴먼메이드는 소위 힙한 동네만 가면 보이는 브랜드로서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한 번의 실수와 그것을 무마할 1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우리 앞에 선 디자이너 니고(NIGO)는 배움과 발전성을 두루 겸비한 인물이다.
니고(NIGO)의 삶을 보면 우리는 배울 점이 많다. 특히 당신이 브랜드 창업에 관심이 있거나 그런 꿈이 있다면 그의 인생은 교과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니고(NIGO)가 가장 낮은 패션계에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디렉터가 될 수 있었던 포인트들을 짚어 보겠다. 인맥을 이용하라, 케릭터를 이용하라, 브랜드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플랜의 기간을 오래 잡아라 그리고 절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라.